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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머니
    카테고리 없음 2022. 5. 25. 16:49

    Cushion for Grandmother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제 요양원에 계시던, 나를 4살 때까지 끼고 살다시피 길러주시던 외할머니는 이 세상에 없다. 할머니가 치매 증상으로 요양병원에 계실 때, 할머니 뵈러 자주 가지 않았다. 가지 '못'했다고 표현할 수 없다. 나는 가지 않은 것이 맞기 때문이다. 미안함과 죄송함이 장례식 내내 밀려왔다. 하지만 줄곧 길을 지나다가, 차를 타다가, 요양원 건물만 봐도 할머니가 떠올랐었다. 정말이다. 마음이 아파서 외면하고 싶었다는 우리 엄마의 마음... 그 만큼은 아니지만 그 마음을 정말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쯤 내 꿈에 나오셨다. 꿈에서 할머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아이가 할머니임을 알았고, 우리의 관계도 할머니와 손녀 지간이었다. 나는 지금 모습 그대로인데... 참 신기한 꿈이었다. 꿈에서 할머니는 행복해 했다. 꿈의 배경은 시장이었다. 할머니가 시장에서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리며 행복해 했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할머니의 새하얀 행복감이 꿈 속 가득 퍼졌고, 그 모습을 눈에 담고 있던 나 또한 진심으로 진심으로 행복해 했다. 주체할 수 없는 행복에 겨워 꿈에서 깼다. 꿈의 이미지가 생생했다기 보다는 그 감정이 너무 생생했고, 그래서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알 수 없는 영적인 세계를 통해 할머니가 지금 행복해 하시고, 천국 가실 것이라는 확신을 준 꿈이다. 그렇게 이른 아침 잠에서 깬 나는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한테 할머니 꿈을 꿨다고 하자마자 엄마는 울먹였다. 엄마도 요즘 할머니 꿈을 많이 꾼다고...... 할머니 잘 지내실까, 건강하실까, 우리는 언제 쯤 뵈러 갈 수 있을까,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이모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셨다더라 등등의 당사자가 빠진 안부를 나누며 대화를 마무리 했다.

     

      그리고 5월 18일.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오전 11시 조금 넘어서. 그 날 저녁은 조수미 내한 투어 공연을 볼 계획이었지만, 다음날과 그 다음날 장례식장을 지킬 삼일의 휴가를 쓰고 야근을 해치운 다음, 엄마를 위로하겠다는 일념을 품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혼자 운전해가는 차 안에서 핸들을 잡은 채 울음이 터졌다. 울고 있는데 친구 만정이가 연락이 왔다. 아이처럼 앙앙 울고 있던 나는 울먹임 가득한 목소리로 만정이의 전화를 받았다. 동생도 먼 길을 운전하여 도착해 있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며 동생이 먼저 그곳에 와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됨을 느꼈다. 처음 느껴보는 종의 위안이었다. 첫 날의 저녁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촌 언니 오빠 동생들과 오가는 안부인사에 나의 우습고도 가벼운 슬픔을 내색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할머니 사진을 보며 또 울먹였다. 사촌 동생들은 언니가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길어서 유난히 더 슬플 것이라는 말을 건냈다. 순간 '그러면 너희는 슬프지 않아?' 하는 날카로운 생각이 머리 속을 스치다 말았다. 장례식이 무엇일까...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행사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신 분은 우리를 만날 수 없고 이제는 하늘에 계시는데 말이다. 할머니는 더 이상 슬픔이 없는 나라로 가셨지만, 우리는 이 생을 살아내야만 하기에 슬픔을 마음껏 내비칠 수 있는 행사를 치르는 것이다. 정말, 더 자주 찾아 뵜어야 했으며, 할머니가 나에게 해주신 많은 것들을 보다 더 자세히 알았어야 했다. should have p.p류의 문장을 이렇게나 많이 쓰다니...... 할머니를 보내며, 내리사랑을 주신 분께는 절대 받은 것 만큼의 은혜를 되갚을 수 없다는 것을 통감했다. 어찌 그 하해와 같은 사랑을 갚을 수 있을까. 살면서 우리는 그 쪽으로 도통 애쓰지 않지 않는가. 그저 나는 그 받은 사랑을 나의 다음 세대에 잘 전달해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 뿐.

     

      남에게 모진 소리 한 번 시원하게 안하셨던 여리고 고우신 할머니. 그 할머니를 그 만의 투박한 방식으로 많이 사랑하시고 아끼셨던 그녀의 남자,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얼마 되지 않으셔서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할아버지를 산소에 묻고 가족 모두 돌아갈 무렵 할머니가 그 곳에 쪼그리고 앉으셔서 슬퍼하시며 생각에 잠기신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할머니는... 그리고 할아버지는... 서로가 계셔서 사시는 내내 좋으셨겠지? 나도 우리 할머니에게 우리 할아버지의 존재와 같은 그런 좋은 배우자를 얻어야겠다. 연세가 많으셨지만 그렇게 정정할수 없었던 할아버지가 그렇게 목욕탕에서 돌아 가시지만 않으셨어도, 우리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요양병원도 알아봐두셨을 분이시다. 생각보다 두 분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기에 멋대로 상상하고 멋대로 추억할 수 밖에 없는 나이다.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할머니는 우리 엄마를 아주 많이 사랑하시고 아주 많이 예뻐하셨고 나도 아주 많이 사랑하시고 아주 많이 아껴주셨다. 조그마했던 우리 할머니. 엄마가 할머니가 관에 들어가시기 전에 모습이 너무 마르고 작다고 했다. 맞다. 나도 봤다. 우리 할머니. 나도 언젠가 할머니가 되겠지. 할머니가 되어가면서 우리 할머니를 추억하겠지. 우리 엄마도 할머니가 되어가면서 더더욱 할머니를 추억하겠지. 하지만 주님, 이 모든 것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우리가 분명히 알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생사고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겸허한 삶 살다가 이 세상 떠나 천국 가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 되시며 우리를 위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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